IBK 기업은행 외환딜러: 세상에서 강력한 통화 달러 로 돈을 버는 직업(방법)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4월 18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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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 기업은행 외환딜러 : 세상에서 강력한 통화 '달러'로 돈을 버는 직업(방법)

IBK인사이드에서는 은행의 다양한 직무에 종사하는 직원들을 만나,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금융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을 알아볼 텐데요. 이번 시간에는 IBK 기업은행 자금운용부의 외환딜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개인에 따라 매달 조금씩 달러를 사두는 것은 부동산이나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의 가격변동의 위험을 상쇄하기 위한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소개했습니다. 달러는 일반적인 파생 상품이나 금융 상품과 다른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통화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가치 하락 위험성이 적기 때문에 개인의 자산, 포트폴리오 구성에서 보험성의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10년 단위의 달러 가격 평균은 1,120원에서 1,130원 선입니다. 주식의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이 커졌을 때 하락하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반면,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이 클 때 안전 자산인 달러는 그 가치가 상승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균선에서 보유한 뒤, 5-10년마다 오는 금융 위기에 안전 자산으로서 차익을 실현할 수도 있습니다. * 개인적인 투자 의견입니다.


작년 같은 경우 연간을 기준으로봤을 때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환율 변동성이 커서 수익을 많이 낼 수 있었습니다.

2015년도 1월 경, ECB 유럽중앙은행에서 소위 말하는 양적 완화인 QE를 단행했습니다. 당시 승진과 함께 목표액이 오른 상태였던 임기묵 차장님은 과감한 배팅을 시도한 결과 6개월간 약 5억 정도의 손실을 경험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큰 손실을 겪었을 때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실패의 경험을 발판 삼아 향후 운용을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주의합니다.


작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피트니스 등 운동시설을 이용할 수 없게 되면서 일상 속 운동으로 계단오르기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처음 목표인 15층 오르기를 시작으로 1년 반 정도 꾸준히 계단 오르기를 지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무실까지 계단을 오르는 동안 휴대폰으로 금융 관련 뉴스 등의 영상 자료를 시청하고 있습니다. 외환 딜러 업무는 환율에 대해 24시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체력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국가별로 휴일과 시차가 달라서 주말에도 환율에 신경쓰게 되곤 합니다. 실제로 환율에 신경쓰느라 가족과 보내는 휴가를 망친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그 때 이후로 주말 또는 휴일을 앞두고는 거래를 자제한다고 하는데요. 환율을 확인하는 것 역시 주식처럼 중독성이 있어서 신경을 완전히 거두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외환 딜러가 되기 위한 첫걸음으로 업무 자체에 대한 ‘관심’을 꼽았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원달러 환율이 얼마인지’, ‘한달 중 원달러 환율은 얼마인지’ 등에 대한 정보들은 알아두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요.

임기묵 차장님의 경우 군복무 기간 동안 이라크 자이툰 사단에서 환전병으로 근무하며 환율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해요.

자금운용부도 중국어, 이공계 등 전공이 매우 다양하다고 합니다. 차장님 역시 외환 딜러와는 거리가 먼 러시아어를 전공했습니다.

사내 교육만으로 외환 딜러가 될 수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외환 딜러’의 경우 해당 업무를 맡기 위해 필수적으로 어떠한 자격증을 요구하지 않으며, 실무 환경에서 이론적 배경지식 보다는 멘탈이나, 경험에 의한 주관적 판단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습니다.


외환 딜러는 금융연수원이나 외부 위탁교육원을 통해 업무와 관련된 규정 등을 비롯해 이론적인 기본 지식을 배웁니다. 더불어 실제 딜러로 투입되기 이전에 업무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모의 트레이닝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모의 트레이닝을 통해 딜러를 희망하는 직원들이 주식, 달러에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칩니다.


IBK 기업은행은 고객 분들께 최대한 정확한 환율 정보를 제시하기 위해 타 은행 대비 환율고시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타행이 평균적으로 300회차 미만의 횟수를 기록할 때, IBK 기업은행의 경우는 1,000회차 가량 환율 정보를 업데이트합니다. 그 말은 즉, 고객들에게 가장 정확한 환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임기묵 차장님은 IBK란 ‘달러’라고 표현했습니다. 기업은행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통화인 달러처럼 고객에게 위기가 왔을 때에도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수 있는 은행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번 IBK인사이드 자금운용부 편에서는 IBK 기업은행 자금운용부의 외환딜러로 근무하고 있는 임기묵 차장님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재테크의 한 방안으로서 달러에 대한 정보와 ‘외환 딜러’가 하는 일, ‘외환 딜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

올해의 딜러상 등 맹활약했지만

거센 실적 압박 시달리다 숨져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KB국민은행 여의도본점 앞에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국민은행지부 노조원들이 실적압박 및 업무부담으로 직원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에 대한 책임자 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기다. 직업에서의 위기. 그보다는 인생 위에 놓인 위기. 이런 상황에 놓이게 바란 건 아닌데 내가 싫으면 떠나면 된다. 인연에 얽매이지 않을 곳으로…’

KB국민은행에서 팀장급 직원으로 일하던 A(50)씨가 5월 26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한 권의 수첩을 남겼다. A씨가 겪었던 지난 몇 달간 일상과 고통스러웠던 내심이 담겨 있었다. 수많은 한숨과 한탄, 그 중 유난히 눈에 띄던 ‘인연에 얽매이지 않을 곳으로’라는 문구는 결국 그의 유언으로 남게 됐다.

A씨는 1994년 국민은행에 들어가 인정받는 행원으로 성장했다. 특히 외환ㆍ파생금융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면서 주로 외환딜러로 활약했다. 2012년에는 세계적인 외환딜러 협회인 ‘포렉스클럽(Forex Club)’에서 주는 ‘올해의 외환딜러상’을 받았다. 이후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줄곧 본점 외환딜러로 근무하다, 2017년 순환근무 원칙상 광화문지점으로 옮기게 IBK 기업은행 외환딜러: 세상에서 강력한 통화 달러 로 돈을 버는 직업(방법) 됐다. 이곳에서도 A씨는 탁월했다. 외환과 상관없는 업무를 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1년간 은행장 표창만 3차례 받았다.

승승장구하던 A씨는 신임 행장이 오면서 올 초 만들어진 ‘아웃바운드(Outbound) 사업본부’란 곳으로 배치됐다. 아웃바운드는 각 지점에서 관리하지 못하는 ‘외부감사대상 규모(직원 수 기준 300명 이상)’의 기업들을 별도로 영업해 거래처로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을 뜻한다. 사업본부 아래 ‘스타팀(팀원 3명)’이라 불리는 조직 29개가 전국을 지역별로 나눠 맡아 공격적으로 영업해야 했다. 일종의 ‘기업영업 별동대’인 셈이다. A씨는 서울 종로구ㆍ중구ㆍ용산구 등을 담당하는 스타팀에 들어갔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야심 차게 만들어진 스타팀은 거센 실적 압박에 시달렸다. 매주 월요일이면 ‘만난 기업 수, 만난 날짜, 만난 기업 중 거래처가 된 곳’을 보고해야 했고, 실적으로 순위를 매겼다. A씨 팀은 전국에서 실적이 가장 좋지 않아 압박이 더욱 심했다. 업무도 과했다. 실적을 올려야 하면서도, 명절이면 지점 창구 지원까지 나가는 등 스타팀 고유 업무가 아닌 것까지 소화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 A씨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스타팀에 온 뒤 당뇨를 얻어 몸무게 급격하게 빠져 주변 동료들이 걱정하기도 했다. 아내에게는 “팀을 옮기고 나서 너무 힘들다” “건강이 나빠져 걱정이다”는 얘기를 입버릇처럼 했다고 한다.

A씨는 서울 지역을 담당하는 상사에게 당시의 고통을 토로하는 글을 메모장에 남겼다. ‘기업금융을 제대로 해 본적이 없는 제가 이 자리에서 업체를 개발하는 것이 너무 큰 압박감입니다. 이 이을 수행할 자신이 없습니다. 제가 못 미친다고 판단되시면 교체해 주십시오.’ 하지만 A씨는 이 글을 끝내 상사에게 전달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국민은행 노동조합은 A씨 사망 이후 지난달 1일부터 2주간 조사해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 은행 측에 책임자 처벌과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사측은 책임자 처벌과 공식 사과를 거부했다”고 노조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 측은 “(고인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라면서도 “해당 사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할 건 없다. 다만 허용된 범위 내에서 유족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직업의 세계] (22) 외환딜러

끊임없이 등락을 반복하던 모니터 속 그래프가 움직임을 멈췄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외환거래가 끝난 것이다. 외환은행 김두현 차장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는다. 머릿속이 멍하고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순간의 판단 실수로 수십만 달러를 잃을 수 있는 게 외환거래예요. 매일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보면 IBK 기업은행 외환딜러: 세상에서 강력한 통화 달러 로 돈을 버는 직업(방법) 됩니다.”

끊임없는 긴장 속에 때론 화장실에 갈 틈조차 없이 바쁜 일과를 보내니 외환딜러란 직업은 고약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도 각 은행의 외환딜러 공모엔 지원자가 넘쳐 매번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다. 고되고 바쁘긴 하지만 외환딜러란 직업이 가져다주는 과실은 크고 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금융시장에선 이미 ‘외환딜러=엘리트’란 등식이 자리 잡았다.

◆높은 IBK 기업은행 외환딜러: 세상에서 강력한 통화 달러 로 돈을 버는 직업(방법) IBK 기업은행 외환딜러: 세상에서 강력한 통화 달러 로 돈을 버는 직업(방법) 진입 문턱=한국금융연수원이 실시하는 자격시험 중엔 외환전문역·국제금융역 등 외환딜러와 관련된 자격증이 있다. 하지만 이런 자격증이 있다고 외환딜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외환딜러가 되려면 외국환 업무 기능이 있는 국내 은행이나 외국 은행의 국내 지점, 종합금융사, 증권사에 취업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물론 국내외 경영대학원(MBA) 과정을 마친 뒤 외환딜러로 취업할 수도 있지만 과거 외환 관련 업무 경력이 없다면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

은행이나 증권사에 취업하기도 어려운데, 거기서 경쟁을 뚫어야만 외환딜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쉽지 않은 관문이다. 국내 은행들은 매년 한두 차례 입사 4~5년차 직원 대상의 공모를 통해 외환딜러를 선발한다. 업무평가, 영어 구사 능력, 해외 체류 IBK 기업은행 외환딜러: 세상에서 강력한 통화 달러 로 돈을 버는 직업(방법) 경험, 외환 등 경제 전반에 관한 지식 등이 평가 기준이다.

우리은행의 외환딜러 선발 방식은 독특하다. 2006년부터 외환딜러 희망자들로 구성된 동호회를 만들어 회원 중 딜러를 선발한다. 연간 두 차례에 걸쳐 한 달 보름가량 진행되는 모의 투자대회 성적 등이 선발 기준이 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원자가 많다 보니 기회를 공평하게 주자는 생각에서 선발제도를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각 은행이 새로 선발하는 딜러는 한 해에 네댓 명에 불과하다.

◆대접받는 전문가=딜러로 선발됐다고 당장 실전에 IBK 기업은행 외환딜러: 세상에서 강력한 통화 달러 로 돈을 버는 직업(방법) 투입되는 것은 아니다. 회사마다 다소 다르지만 1년 가까이 국내외 연수과정을 거치고, 외환업무 지원 부서나 국제금융 부서에서 일하며 감각을 익힌다. 외환거래를 담당하더라도 초기 몇 년간은 매매와 손실 한도가 제한되는 주니어 딜러 시절을 거쳐야 한다. 여기서 실력을 인정받으면 하루 매매 한도가 1억~2억 달러에 이르고, 기업이나 개인이 주문하는 거래를 IBK 기업은행 외환딜러: 세상에서 강력한 통화 달러 로 돈을 버는 직업(방법) 처리할 수 있는 선임 딜러가 된다. 선임 딜러는 시중은행이라 할지라도 한두 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단 좁은 문에 들어서고 나면 드넓은 대지가 기다린다. 한 외국계 은행 외환딜러는 “ 환율을 매개로 외환을 거래하는 딜러는 국내외 경제 현상과 향후 전망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금리·주가·경기는 물론 국내외 경제정책과 그에 따른 경제상황의 변화를 소상히 꿰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때론 도쿄· 뉴욕·런던 등지의 외환시장에서도 거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외국어 구사 능력도 딜러가 갖춰야 할 자질 중 하나다.

이처럼 경제적 지식과 외국어 실력으로 무장돼 있다 보니 외환딜러가 금융시장의 엘리트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선 달러에 대한 IBK 기업은행 외환딜러: 세상에서 강력한 통화 달러 로 돈을 버는 직업(방법) 수요가 가장 많기 때문에 은행마다 달러 거래 딜러가 가장 많다. 그 외에 유로나 일본 엔화를 거래하는 딜러, 통화·금리 스와프를 거래하는 딜러 등이 있다.

다만 딜러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이 길지는 않다. 신한은행 홍승모 차장은 “업무 강도가 여느 직종보다 세기 때문에 대개 40대 초반이면 일선 딜러에서 물러나 IBK 기업은행 외환딜러: 세상에서 강력한 통화 달러 로 돈을 버는 직업(방법) 딜링룸 총괄 등 관리 업무나 국제금융·자금 파트를 맡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외환과 파생상품시장을 넘나드는 딜러들도 있다. 국내엔 원-달러 시장밖에 없지만 정부의 금융시장 활성화 정책에 따라 앞으로 원-엔화, 원-유로화 시장이 개설될 가능성도 있어 외환딜러의 역할과 활동이 지금보다 훨씬 강력해질 수도 있다. 외환딜러의 연봉은 성과급제가 적용돼 은행 내 다른 직종보다 10~20%가량 높은 경우가 많다.

김준현 기자
자료협조:인크루트 www.incruit.com

■선배 한마디
권우현 우리은행 트레이딩부 과장
“오전 6시부터 긴장 모드 … 실력만큼 체력도 중요”

우리은행 트레이딩부에서 달러화 딜러로 일하는 권우현(35) 과장은 꿈을 이룬 행운아다. 무역학을 전공하면서 외환딜러의 꿈을 꿨고, 1998년 우리은행의 전신인 한일은행에 입사해서도 줄곧 외환딜러만을 생각했다. 그러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초년병에게는 아예 외환딜러에 공모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고, 지점 근무를 하다 보니 준비도 덜 돼 있었다.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입사 후 4년이 지난 2002년 봄. 처음으로 사내 외환딜러 공모에 나섰지만 결과는 낙방.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고 다시 도전해 그해 10월 꿈을 이뤘다. 이후 국내외 연수를 거쳐 2004년부터 주니어 딜러로 일을 시작했고, 2006년 10월에는 선임 딜러로 승진했다. 올해 초엔 기획재정부·한국은행·금융회사 등으로 구성된 서울외환시장운영협의회가 주는 ‘2007년 최우수 딜러상’을 받았다.

권 과장은 “외환딜러로 일하는 게 자랑스럽고 보람 있다”면서도 “때론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오전 6시쯤 IBK 기업은행 외환딜러: 세상에서 강력한 통화 달러 로 돈을 버는 직업(방법) 일어나보면 휴대전화에 해외 주요 외환시장에서 날아든 속보 문자만 200여 건이 쌓여 있다. 출근 후 거래에 앞서 각종 국내외 경제지표를 점검하고, 하루의 매매 전략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서울 외환시장이 끝난 이후 런던·뉴욕 시장에서 거래하느라 밤늦은 시간에 퇴근하는 일도 많다.

그래서인지 권 과장은 “외환딜러가 가져야 할 중요한 자질 중 하나는 체력”이라고 말했다. 촌각을 다투는 외환거래에서 체력이 소진된다면 판단력과 그에 따른 실행 능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지식과 영어 구사 능력도 뛰어나야 하지만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선 훌륭한 딜러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권 과장이 체력 이상으로 강조하는 외환딜러의 덕목은 ‘윤리성’이다. 그는 “하루에 수억 달러를 거래하다 보면 큰돈을 벌 때도 있지만 큰 손실을 낼 때도 있다”며 “중요한 건 실수를 감추기 위해 손실을 은폐하다 보면 그게 습관이 되고, 결국 큰 파국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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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결될 듯 될 듯하던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가 마침내 마지막 고비를 넘었다. 시작부터 따지면 1년9개월, 해결 논의 4개월 만에 비로소 실마리가 풀린 것. 예상과는 딴판으로 이렇게 지연된 까닭은 무엇일까. 북한에서 엘리트 금융가 코스를 밟으며 승승장구하다 1995년 탈북한 최세웅 BGC캐피털마켓 서울법인 대표로부터 북한이 BDA 문제와 관련해 보여준 ‘알 수 없는 행동’의 배경과 속사정, 그간의 혼선이 남긴 교훈을 들어봤다.

탈북 외환딜러 최세웅이 분석한 ‘BDA 문제’의 실체

‘계좌는 52개인데, 신청서는 한 장?’

6자회담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3월21일, 관심의 초점으로 떠오른 마카오 BDA의 북한 계좌와 관련해 쏟아져 나온 언론보도의 헤드라인이었다. 3월19일 북-미 양측의 합의에 따라 BDA 자금의 동결이 풀렸지만, 송금을 신청해야 할 북한이 52개 계좌주 전체의 서명 대신 달랑 한 장의 신청서를 들고 왔다는 소식이었다. 해결을 눈앞에 둔 것 같았던 BDA 문제가 다시 엉키기 시작해 이후로도 한참을 더 끌게 된 상징적인 계기였다(상자기사 IBK 기업은행 외환딜러: 세상에서 강력한 통화 달러 로 돈을 버는 직업(방법) 참조).

계좌주 본인의 서명도 없이 예금을 찾겠다고 나선 북한의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두고 언론과 전문가들, 정부 당국자들조차 “북한 당국이 금융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당국의 명령이라면 모든 절차가 무시될 수 있는 북한에서처럼 은행들이 미국이나 중국 정부의 말 한마디에 꼼짝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었다. 한 정부 고위당국자는 비공식 브리핑을 통해 “이번 일이 북한이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BDA 문제에 임하는 북한의 태도엔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았다. 2005년 이후 동결조치만 풀리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매달렸던 북한은, 정작 올해 1월 베를린 회동과 2·13합의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자 오히려 버티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를 두고 무수한 억측과 논의가 쏟아졌지만, 정작 북한의 국제금융체제가 ‘사각지대’로 불릴 만큼 제대로 알려진 게 없는 분야이다보니 뾰족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막연히 ‘폐쇄국가 북한이 국제금융에 밝지 못해 벌어진 해프닝’이라는 추측뿐이었다.

1995년 탈북한 최세웅(47)씨는그런 의미에서 BDA 문제에 얽힌 뒷배경이나 북한의 국제금융에 대해 풀이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인물이다. 북한 노동당 재정경리부장(한국의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최희벽씨의 IBK 기업은행 외환딜러: 세상에서 강력한 통화 달러 로 돈을 버는 직업(방법) 차남으로, 1979년 평양외국어학원, 1984년 김일성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이후 북한 노동당의 대외결제를 담당하는 조선대성은행에 입행해 외환담당 과장과 국제부 차장을 거쳤다. 이후 수년간 런던 현지법인에서 대표로 일하며 금과 외환선물을 거래하다(대성은행은 BDA 문제의 당사자 은행 가운데 하나다) 조선통일발전은행 부총재보를 끝으로 서울에 온 그는, 이후 금융결제원 자금중개실과 나라종합금융 국제부 과장으로 일했으며 지난해까지 ‘에스엔뱅크’라는 벤처기업을 운영하기도 했다.

현재는 전세계 외환도매시장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통합음성전자 중개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 기업 BGC캐피털마켓 서울법인의 대표로 일하는 최 대표는, 그간 북한이나 BDA 문제에 대해서는 공개적인 발언이나 언론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란다. 서울 토박이보다 훨씬 더 자본주의적인 이 왕년의 ‘붉은 자본가’를 어렵사리 설득해 만난 자리. 먼저 BDA 문제와 관련해 가장 궁금한 점부터 물었다.

▼ BDA 문제에 접근하는 북한의 태도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북한이 그 정도로 국제금융에 대해 무지한가.

“계좌주가 아닌 사람이 자금을 인출하거나 송금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불가능하다. 북한이라고 해서 그 당연한 상식을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이다(웃음). 북한 역시 자본주의 국가들과 교역하고 외환을 거래하고 있는데 그런 기본적인 상식을 왜 모르겠나. 여기에는 분명 내부적인 원인이 있다. (52개 계좌주 가운데 몇몇이 사망했기 때문이라는 보도가 있었지만)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그 권리 승계자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릴 이유는 없다. 북한 경제의 특성상 해외에 있는 북한 계좌는 국가기관 혹은 그 대표자의 것일 수밖에 없다. 만일 BDA에 국가기관이 파악하지 못한 계좌가 있었다면 이는 누군가가 횡령한 돈을 맡겨놓은 비자금 계좌라는 뜻이 된다. 3월21일의 해프닝은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시간을 벌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한다.”

BDA 계좌 가운데 애초에 북한 당국이 파악하지 못한 계좌가 있었다는 사실은 정보 당국자들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52개 계좌 가운데 39개는 대성은행과 마카오에 있는 조광무역 등 국가기관의 공식계좌였지만, 나머지 13개는 평양 당국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계좌였다는 것. 국가정보원은 2005년 BDA 문제가 불거진 직후부터 이 같은 내역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게 이 무렵 청와대 안보라인 관계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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